지난번 포스팅에서 박찬욱 감독의 두 번째 해외 드라마 <동조자>를 추천하며 소개하는 글을 썼었는데요.
2024.11.09 - [영화.드라마] - 박찬욱이 담아내는 아시아-미국인의 정체성 <동조자> 추천
이번에는 <동조자> 솔직 리뷰입니다. 아무래도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그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지만, 저는 어렸을 적에 잠깐 언급되고 지나가거나 영화나 책에서 잠깐 지나가는 정도의 지식만 가지고 있을 뿐 잘 알지 못합니다. 저와 같은 분들도 충분히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면서 리뷰 시작하겠습니다.
<동조자>
연출 : 박찬욱,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마크 먼돈
극본 : 박찬욱, 돈 맥켈러
출연 : 호안 수아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산드라 오, 토안 레, 프레드 응우옌
줄거리
자유 베트남이 패망한 1970년대, 미국으로 망명한 베트남 혼혈 청년이 두 개의 문명, 두 개의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겪는 고군분투를 다룬 이야기
우리가 아는 '베트남 전쟁'은 모두 미국인의 시각에서 쓰여졌는지도?
베트남 전쟁을 다룬 수많은 영화들이 있습니다. <풀 메탈 자켓>, <지옥의 묵시록>, <람보>, <플래툰> 등을 떠올리실텐데요. 어쩌면 우리가 아는 '베트남 전쟁'은 순전히 미국인의 시각에서 본 관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없이 재생산된 '베트남전쟁'의 이미지는 모두 백인들, 그들의 문화,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니까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실제 베트남 작가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베트남 배우들을 주인공으로(심지어 대사와 분량도 많음), 아시아인 감독이 각본과 연출까지 맡은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동조자>입니다. 여전히 미국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이 드라마 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매력적입니다. 베트남, 아시아인들을 바라보는 미국인에 대한 표현이 꽤 적나라할 뿐더러 배우를 사용하는 방식도 매우 매력적입니다. 아시아인이 바라보는 미국인, 그리고 베트남전쟁에 대한 시각이 박찬욱 감독의 각본과 연출로 표현되어 세련되고 아이러니컬합니다.
너네들 눈에 우리가 다 비슷해보이니? 우리도 그래
저는 특히 <동조자>에서 1인 5역으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출연하게 한 방식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데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각 미국인들을 대표하는 5명의 역할로 분장하여 출연하였습니다. 첫 번째 역은 클로드 CIA요원인데, 남자주인공이 어렸을 때 점찍어두고 주인공을 자신의 말로 사용하고 미국 문화에 영향을 받도록 만든 인물입니다. 주인공이 미국 문화를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든 인물이면서 그에게 때로는 형처럼 편안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CIA 요원답게 주인공을 압박하기도 하는 인물이죠. 미국 정부의 패권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두 번째 역은 미국 동양학과 학과장 해머 교수입니다. 그는 동양문화에 친근하고 특히 일본문화를 예찬하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는데요. 그의 교수실은 일본문화로 장식되어 있고, 기모노를 즐겨 입고, 아시아 문화를 잘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의 주변엔 아시아인들이 있지만 지나친 예찬은 또 다른 차별이죠. 철저히 미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에 그치고 마는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세 번째 역은 네드 고드윈 하원의원입니다. 그는 미국에 정착한 베트남인들을 지원해주고 있는 듯 하지만 뒤에서 이민자들을 이용하여 정치적 우위를 점하려는 전형적인 미국 정치인입니다. 네 번째 역은 니코스 다미아노스라는 영화감독입니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표현하려는 예술 영화 감독처럼 표현되지만, 앞서 언급했던 수많은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와 다를바 없는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진정한 사유나 고찰 없이(주인공이 자문을 맡았지만 그의 자문에는 크게 관심이 없음) 그저 미국인이 베트남 전쟁에 자성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양심있는 사람인 것처럼 미국인을 예찬하고 베트남 전쟁을 그저 배경으로밖에 이용할 줄 모르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역은 주인공의 친아버지 프랑스인 신부 역을 맡았습니다. 잠깐 나오고 말지만, 성직자이면서 주인공의 엄마를 강간하고(명확하게 표현되진 않지만 그런 뉘앙스) 주인공 가족을 버리고 떠나버리는 외국인 인물입니다.
5명의 캐릭터는 좁게는 주인공을, 넓게는 베트남, 아시아를 바라보는 전형적인 미국인의 시각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들은 모두 한 배우로 등장합니다. 마치 백인들이 자신들 외의 인종을 '다 비슷해 보인다'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도 백인들이 헷갈리기도 하는데, 그것을 그대로 이용한 겁니다. 게다가 <동조자>의 존조가 연기한 캐릭터, 매번 출연할 때마다 잠깐 등장했다가 죽고 마는 아시아 캐릭터처럼 무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전형적인 미국 백인 남성 캐릭터로 사용했다는 것이 묘하게 통쾌합니다. 심지어 보다 보면 같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인데 지금 연기하는 게 1번 캐릭터인지, 2번 캐릭터인지 헷갈리기도 하는데 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너가 걔인지, 얘인지 잘 모르겠어"
주인공의 이름이 뭐였는지 찾아봤는데, 너무 낯설다
'동조자'는 베트남에서 북베트남 스파이를 뜻하는 용어라고 합니다. 영어 번역인 'sympathizer' 역시 냉전 시대에 많이 쓰던 용어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수사기관이나 군 정보기관 등에서 쓰였다고 합니다. '스파이' 자체를 표현하는 말이면서 쉽게 다른 인물에 '동조'하고 마는 주인공의 성격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는 베트남과 프랑스의 혼혈인이면서 베트남에서 태어나 성장하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남베트남의 비밀경찰이면서 북베트남의 스파이입니다. 국적은 베트남이지만 이중국적자이자 이중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양 쪽에 발을 담그고 있는 스파이입니다. 캐릭터가 빠져있는 딜레마가 캐릭터 자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저는 드라마를 보고 난 후에 주인공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호아 수안데'인데요. 드라마에서 그의 이름이 몇 번이나 등장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대위'라는 사회적 지위로만 불리고 있습니다. 그의 친구들 이름, 잠깐 만났던 파트너, 그가 죽인 인물들의 이름은 기억나는데 그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이름'은 정체성을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정체성은 확실한 노선이 정해져 있지 않고, 정의내릴 수도 없으며, 어디든 왔다갔다 할 수 있고 흘러가버리는 '디아스포라' 그 자체가 아닐까요?
제가 미처 알아내지 못한 또 다른 의미들을 담아내고 있는 드라마겠지만, 우선 추천을 드리는 건 "재미있기"때문입니다. <성난 사람들>처럼 폭발하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어 아이러니 자체를 즐기게 하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시선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보시고, 저처럼 낄낄 웃으실 수 있길 바랍니다.
별점 ★★★★ 박찬욱 감독은 확실히 배운 사람인 듯
👍 : 이민자 이야기, 디아스포라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 베트남 전쟁에 관심있는 사람/ 박찬욱 감독을 좋아하는 사람/ <리틀 드러머 걸>을 재미있게 본 사람
👎 : 베트남, 베트남 전쟁, 아시아 이민자 등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다면
관련 영화, 시리즈 추천
👉 박찬욱 감독의 첫 번째 해외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 미국 이민 아시안들의 이야기를 담은 <성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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