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각국의 영화평론가들이 선정한 영화들을 소개하는 책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을 보며 고전영화부터 영화 1001편에 대한 리뷰를 작성해 보고자 시작하는 포스팅입니다. 1001편의 첫 번째 작품은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나라 여행>이지만 최초의 영화, 영화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0/1001"이라는 번호를 붙이겠습니다.
공식적으로 최초의 영화는 1895년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시작을 살펴보면 그 역사는 더 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은 프랑스 동남부 아르데슈에 위치한 쇼베 동굴벽화 중 하나입니다. 쇼베 동굴벽화는 지구상 가장 오래전에 그려진 동굴벽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동물의 발이 4개가 아닌 여러 개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구석기시대의 벽화에서도 표현된 "움직임을 포착하여 재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라고 볼 수 있죠. 다시 말해 영화는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인간의 욕구가 발현된 예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기술의 발달과도 밀접합니다. 즉, '카메라'의 발달이 영화 기술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는 거죠. 카메라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카메라 옵스큐라"입니다.
"어두운(obscura) 방(camera)"이라는 라틴어인데요. 어두운 공간 혹은 상자에 작은 구멍을 뚫어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을 통해 상을 맺히게 하는 방식의 기계입니다.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발명한 광학 장치인데 영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사용하는 것을 보실 수도 있습니다. 화가들은 옵스큐라에 맺힌 상을 보고 그림을 그렸었는데, 이 상을 필름에 반응시켜서 '사진'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진이 개발된 이후에는 "회화는 죽었다"며 회화에서 빛이나 시간의 변화에 따른 인상을 표현하는 인상주의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카메라가 발달하면서 인간의 지각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 주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경마를 좋아하는 미국의 한 철도기업가는 친구와 내기를 하게 됩니다. 말이 달리는 동안 말의 네 발이 지면에서 완전히 떼지는 순간이 있는지 없는지를 겨루기로 한 것이죠. 그래서 이 기업가는 에드워드 머이브리지라는 사진작가에게 그것을 증명시켜 달라고 의뢰하게 됩니다. 그래서 머이브리지는 경마 트랙에 총 12대의 카메라를 1피트 간격으로 설치하고 카메라 셔터마다 실을 매달아서 트랙 가운데에 연결합니다. 말이 달려오면서 실이 끊어지면 카메라 셔터가 저절로 열리도록 장치해 둔 것이죠.
위 사진이 머이브리지의 "움직이는 말" 사진입니다. 이 실험을 의뢰한 기업가는 결국 내기에서 지게 되었지만, 이 실험은 오늘날 영화라 부르는 활동사진의 기원 중 하나로 영화사에 중대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실험 이후에 머이브리지는 1초에 12개의 정지된 이미지를 연속으로 보면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주는 "주프락시스코프"라는 장치를 만듭니다. 이는 만국박람회에서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습니다. 이 외에도 이 당시 정지된 이미지를 연속으로 보여주는 여러 장치들이 생겨나는데, 빠르게 그림이 움직이면서 우리의 시각이 그림과 그림 사이의 틈을 느끼지 못하고 상이 계속 맺혀 있어 마치 그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시각잔상효과를 이용한 장치들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지각에 대한 인식, 기술의 발달이 영화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죠.
이 기술의 발전에 에디슨도 참여하게 됩니다. 1891년 에디슨은 키네토그래프라는 카메라와 키네토스코프라는 영사기를 발명합니다. 그러나 키네토그래프는 무게가 상당하여 외부 촬영이 쉽지 않았고, 키네토스코프는 1인 영사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를 만들고 특허를 냅니다. 이는 에디슨의 카메라와 영사기보다 무게가 1/100로 가벼웠고, 촬영과 영사 기능을 겸용하고 있는 장치였습니다. 이를 이용해 뤼미에르 형제는 1895년 3월 22일 파리의 국립산업개발협회에서 소규모 청중 앞에서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La Sortie Des Usines Lumiere)>을 상영했습니다. 이미 컬러 사진이 있었지만 움직이는 흑백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 이후 1895년 12월 28일, 파리 그랑카페의 인디안살롱에서 최초로 유료 대중 상영을 하게 됩니다.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La Sortie Des Usines Lumiere)>, <물 뿌리는 정원사(L'Arroseur Arrosé)>, <아침 아기 식사(Repas de bébé)>등 총 10편의 단편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영화로 알려진 <열차의 도착(L'Arrivée d'un train en gare de La Ciotat)>은 사실 1896년 1월에 상영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특히 관객들이 기차가 스크린을 향해 달려오는 것처럼 생각하여 놀라 극장 밖을 뛰쳐나갔다는 이야기가 유명하기도 하죠. 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소문입니다. 그리고 1896년에서 1897년까지 유럽, 러시아, 호주, 남미, 일본에까지 뤼미에르 형제의 단편영화들은 상영을 이어가며 유명세를 떨칩니다.
최초의 영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후기 영화이론가들이 정리하여 뤼미에르 형제로 공식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에디슨의 키네토그래프"는 그전에도 있어왔던 "주프락시스코프"나 "페나키스티스코프" 등의 애니메이션 장치의 연장이고,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는 다수의 대중들에게 영화를 상영한 그 '상영'자체, '체험'자체이므로 이를 영화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대세입니다. (혹시 주변에 전화번호 뒷자리가 '1895'이신 분이 있으시다면 그 분은 영화종사자이시거나 영화마니아입니다)
영화의 시작은 인간 지각에 대한 인식이 기술로 도입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잔상효과를 생각해 보면 상영시간의 절반은 어둠이고, 절반은 바뀌는 정지이미지들, 빛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다시 말해 이 '환상'이 영화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빛으로 재현되는 환상의 체험이 '영화'의 정의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L'Arrivée d'un train en gare de La Ciotat)>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으며, 유튜브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유튜브에 "lumiere brothers"를 검색하면 그 당시 상영한 단편영화들 몇 편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archive.org/details/youtube--e1u7Fgoo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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